콜슨은 자신도 질문했던 적이 있는 “나는 누구인가”를 발견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의 개인적인 관계에서는 “나는 왜 이 곳에 있는가?”와 “나는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등의 질문에 대해서도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누구인지, 그리고 살아가는 목적을 발견하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입니다”라고 썼습니다. (에베소서 1:11)
예수 그리스도와 개인적인 관계를 맺게 되면 예수는 우리 내면의 공허함을 채우고 평화를 주며 의미와 희망에 대한 우리의 욕구를 충족시켜줍니다. 더 이상 욕구 충족을 위해 일시적인 자극에 의존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는 우리 안으로 들어오시게 되면 진정하고 영속적인 사랑과 안정감에 대한 가장 깊은 갈망과 필요성도 채워줍니다.
놀라운 점은 하나님 자신께서 인간의 몸으로 오셔서 우리의 빚을 갚아주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죄악의 댓가도 더 이상 지불할 필요가 없습니다. 바울은 이 글에서 골로새인들에게 이 점을 분명히 설명합니다.
“여러분은 그의 적이었으며, 사악한 생각과 행동으로 그와 멀리되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는 여러분을 친구로 다시 받아들였습니다. 그는 인간의 몸으로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함으로써 이를 해냈습니다. 그럼으로써 그는 하나님의 존재를 여러분의 안으로 보냈으며 여러분도 어떤 잘못도 없이 성스럽고 결백한 모습으로 그 앞에 설 수 있게 되었습니다. (골로새서 1:21-22 NLT)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가 스스로에게 할 수 없었던 일을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의 희생적인 죽음으로 죄악에서 자유를 찾았습니다. 대량 학살범이 판사 앞에 서서 완전 사면을 받는 셈입니다. 이 범인은 사면을 받을 가치가 없으며,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생이라는 하나님의 선물은 전혀 돈이 들지 않으며, 누구나 가져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면을 받았다 해도 실제로 받아들이는 것은 우리가 할 일입니다. 선택은 여러분의 것입니다.
여러분은 인생에서 하나님의 값 없는 제안을 받아들이고 싶은 때에 있습니까?
마돈나, 보노, 루이스, 콜슨처럼 여러분도 공허한 삶을 살아왔습니다. 무엇을 해도 내면의 공허함이 채워지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그 공허함을 채워주시고 한 순간에 여러분을 변화시켜 드립니다. 하나님은 의미와 목적이 가득한 인생을 살도록 우리를 창조하셨습니다. 예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목적은 생명을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요한복음 10:10)
또는 여러분이 잘 지내고 있지만 마음이 불안하고 평화롭지 못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도덕률을 위반했으며 그의 사랑과 용서에서 멀어졌음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합니다. 예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너희들에게 선물을 남겨주노라. 마음과 영혼의 평강이다. 내가 주는 평강은 세상에서 얻는 평강과 다르노라.”
그러므로 공허한 욕구로 가득한 삶에 지치거나 창조주와의 평화롭지 못한 관계가 고민이라면 그 해결책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면 하나님은 여러분의 죄악을 모두, 과거의 죄, 현재의 죄, 그리고 미래의 죄까지 사해주시고 여러분을 하나님의 자녀로 거둬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께 사랑하는 자녀로서 이 땅에서의 삶의 목적과 의미를 주시며, 하나님과 함께 영생을 약속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한복음 1:12)라고 합니다.
죄악에 대한 용서, 삶의 목적, 영원한 생명이 모두 요청하는 대로 여러분의 것이 됩니다. 지금 바로 기도를 통해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여러분의 삶에 초대할 수 있습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나누는 대화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마음을 알고 있으며 그 마음의 자세를 중시 여기므로 여러분의 말에 신경쓰시지 않습니다. 다음과 같은 기도문을 읽어 보십시오.
“사랑하는 하나님, 저는 하나님을 개인적으로 알고,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 하고 싶습니다. 주 예수님, 저의 죄악을 위해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심에 감사합니다. 저는 제 삶의 문을 열고 하나님을 저의 구세주이자 주님으로 영접합니다. 제 삶을 주장하시고 저를 변화시켜 주님께서 원하시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십시오.”
이 기도가 여러분의 마음의 갈망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위의 기도를 여러분의 모국어로 직접 해 보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에게 헌신할 때는 그가 여러분의 삶에 들어가고 여러분의 인도자, 상담자, 위로자, 그리고 가장 친한 친구가 되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시련과 유혹을 극복할 힘을 주시며, 의미와 목적, 능력으로 가득한 새로운 삶을 경험할 수 있도록 자유롭게 풀어주십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자녀로 거둬들이시기 위해 지불한 비싼 대가를 이해하게 되면 그 순간부터 삶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새로운 성도가 된 후에도 여러분은 유혹을 받게 되며 의심과 실패의 순간이 닥치게 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절대 여러분을 포기하지 않으시며, 여러분의 삶에 예수님을 영접하시게 되면 그 분의 신실함과 그 분을 위해 살아갈 수 있는 힘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리스도와 새로운 삶을 살아가실 준비가 되셨다면 다음의 약속과 성장의 원칙을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그리스도 안에서의 새로운 삶
예수 그리스도를 여러분의 개인적인 구세주와 주인으로 받아들이기로 결심하셨다면 여러분은 영원히 그 분의 자녀가 됩니다. 그 분의 자녀로서 여러분은 다음과 같은 멋진 약속을 비롯한 유산을 받게 됩니다:
- 예수님께서 여러분의 삶에 들어오시며, 절대 떠나시지 않습니다.
- 예수님은 여러분의 죄악을 모두 용서하십니다.
- 예수님은 여러분과 함께 영원한 삶을 살 수 있게 해 주십니다.
- 예수님은 여러분의 기도를 듣고 답을 주십니다.
- 예수님은 자신을 따를 수 있는 힘을 여러분에게 주십니다.
예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
예수님께서는 여러분 안에 지내시고 영원한 여러분의 친구이자 주인이 될 것을 약속하십니다. [2] 예수님의 사랑은 여러분의 선함 또는 기분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여러분이 경험할 수 있는 감정적인 기쁨은 항상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니지만, 예수님은 항상 계십니다.
젊은이들의 리더격인 사만사 티드볼은 자신이 10대였을 때 수많은 남자를 만났지만 게속해서 몇 주만 지나면 지루함을 느끼는 자신을 발견한 이야기를 합니다. 사만사는 남자들이 쫓아오는 모습에 감정적인 기쁨을 경험했으며, 물론 이는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그 기쁨이 하나님과 처음 알게 되었을 때 느낀 것과 비슷한 감정이었다고 말합니다. 처음에 밀려오는 감정이 지나고 나면 내면이 공허함을 느끼고 또 다시 다른 곳에서 남자를 찾아 나서곤 했습니다. 그녀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사랑함을 알고 있었지만 항상 그 사랑을 느끼지는 못했습니다.
사만사는 블로그에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나는 내가 강제로 감정을 느낄 수 없음을 배웠습니다. 하지만 나는 내가 아는 것에 대해 되돌아볼 수 있으며 하나님께서 나를 진정으로 사랑하신다는 점을 믿습니다. 나는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4:9-10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을 때 그 의미를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와 함께 영생을 살 수 있도록 단 하나뿐인 아들을 세상에 내려보냄으로써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 지 보여주셨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사랑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했다는 것이 아니라, 그가 우리를 사랑했고 우리의 죄를 사하기 위한 희생양으로 그의 아들을 보내셨다는 점이 진정한 사랑입니다.” 만약 예수님이 나와 여러분을 위해 돌아가셨다면 이는 우리의 자존감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친구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습니다.”(요한복음 15:13) 말할 필요도 없이 하나님은 가장 큰 사랑의 행동인 우리를 위해 죽을 수 있을 정도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습 그대로를 사랑하십니다. 더 좋은 삶을 살거나 더 깊은 생각을 한다고 해도 하나님께서 지금보다 더 우리를 사랑하게 만들 수는 없습니다. 사만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사람들의 사랑을 혼동하지 마세요. 사람들의 사랑은 행동 등의 요소로 강해질 수 있으며, 실수를 통해 약해지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계신 바로 그 곳에서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을 위한 의미 있는 삶
예수님께서 여러분을 위해 하신 행동을 생각해보면, 우리의 삶도 그 분께 의미가 있는 삶으로 만들고 싶어집니다. 사도 바울은 이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한 사람이 모두를 위해 죽었기 때문에 모두가 죽었다는 점을 확신하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사랑은 우리에게 무언가를 하도록 만듭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모두를 위해 죽었으며, 살아가는 자들은 더 이상 자신을 위해 살아가지 않고, 자신을 위해 죽은 후 살아나신 예수님을 위해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스도와 새로운 여행을 시작하게 되면 예수님께서는 원래 계획하신 사람의 모습으로 여러분을 변화시킵니다. 하지만 결과가 바로 나타나지는 않습니다. 기독교인의 삶은 100미터 달리기보다는 마라톤에 가깝습니다. 가장 우수한 주자는 항상 오래 훈련을 하는 이들입니다. 기독교인으로서 훈련은 다음의 5개 분야가 수반됩니다.
- 하나님의 말씀과 시간을 보낼 것.
-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시간을 보낼 것.
- 믿음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복종하는 법을 배울 것.
- 다른 이들과 함께 하나님을 공경할 것.
- 다른 이들에게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대해 말할 것.
여러분의 영적 여행에서 “다음 단계”는 이렇습니다.
이 곳을 클릭하면 그리스도를 위한 삶을 시작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종교 관련 설문조사
아니요, 저는 기도를 하지 않습니다. 예, 저는 기도를 했으며 예수님을 제 삶에 초대하였습니다. 예, 저는 기도를 했으며 저의 삶을 예수님께 다시 바쳤습니다. 아니요, 저는 이미 예수님을 제 삶에 초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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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 JesusOnline Ministries. 본 기사는 Bright Media Foundation & B&L Publications에서 Y-Jesus 에 부록으로 제공한 것입니다. Larry Chapman,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