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는 하나님에 대해 어떤 말을 했을까요?
하나님은 관계적입니다.
많은 이들은 하나님을 우리가 알 수 있고 함께 할 수 있는 어떤 사람이라기 보다 하나의 힘과 같은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예수가 언급하는 하나님은 스타워즈에 나오는 인간 외적인 힘(Force)과 같이 그 선함이 전압 단위로 측정되는 존재가 아닙니다. 또한 하나님은 하늘에 존재하며 우리의 삶을 불쌍하게 만드는 것을 즐기는 인정 없는 귀신도 아닙니다.
그와 반대로, 하나님은 우리와 같이 관계를 중시하는 존재이며, 우리보다 더 중시하는 존재입니다. 하나님도 생각을 하고, 소리를 듣습니다. 하나님도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의사소통을 합니다. [5] 예수는 하나님이 어떤 존재인지 말하고 보여주었습니다. 예수에 따르면 하나님은 우리 모두를 친밀하고 개인적으로 파악하고 있으며 계속해서 우리에 대해 생각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사랑입니다.
또한 예수는 하나님이 사랑이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는 자신이 가는 곳마다 병자를 치유하고 상처받은 이들과 가난한 이들에게 손을 내밀어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매력이나 행동에 기반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우리의 사랑과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전적으로 희생적이며 사심이 없습니다. 예수는 하나님의 사랑을 완벽한 아버지의 사랑에 비유했습니다. 좋은 아버지는 아이들에게 최고의 것만을 주고 싶어하며 아이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원하는 것을 제공합니다. 하지만 아이들을 위해서 엄하게 대하기도 합니다.
예수는 인생과 삶에서 중요한 것에 대한 아버지의 충고를 거부한 반항적인 아들에 대한 이야기로 하나님의 사랑을 묘사합니다. 건방지고 고집스러운 아들은 일을 그만두고 신나게 살고 싶어합니다. 아버지가 유산을 물려줄 때까지 기다리는 대신 미리 달라고 고집부리기 시작합니다.
아버지는 아들의 요청을 들어줍니다. 하지만 아들은 문제가 생기기 시작합니다. 방탕하게 살면서 유산을 써버린 반항적인 아들은 돼지 농장에서 일해야 했습니다. 배가 고파진 나머지 돼지 죽조차 맛있게 보였습니다. 낙담한 아들은 아버지가 받아줄 지 확신할 수 없음에도 짐을 싸서 집으로 돌아갑니다.
예수는 아버지가 아들을 반갑게 맞이했을 뿐 아니라 집에서 달려나와 반겨줬다고 말합니다. 너무나 기뻐했으며 아들이 돌아온 것을 축하하는 잔치까지 성대하게 열어주었습니다.
아버지가 그 아들을 그렇게 사랑했음에도 처음에 떠났을 때 쫓아가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사랑하는 아들이 고통을 겪고 반항적인 선택의 결과로 어려움에 처하게 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사랑은 절대로 우리에게 최상의 것을 빼앗지 않는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이를 통해 우리가 잘못된 선택을 할 때 그 결과를 짊어지게 됩니다.
또한 하나님은 자신의 성품을 결코 타협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성품은 우리 깊숙한 내면에 있는 모습입니다. 우리의 생각과 행동의 근간이 되는 본질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깊숙한 내면은 어떨까요?
하나님은 거룩합니다.
성경 전체에 걸쳐 약 6천번 가까이 하나님에 대해 “거룩하다”는 표현이 사용됩니다. 거룩하다는 말은 모든 면에서 하나님의 성품이 도덕적으로 순수하며 완벽함을 의미합니다. 한 마디로 한 점의 흠도 없다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은 순수하지 않거나 도덕적이지 않은 생각을 절대 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거룩함은 악과 함께 존재할 수 없다는 의미도 됩니다. 악함은 하나님의 천성에 반대이며, 하나님은 악함을 싫어합니다. 그 분에게 더러운 무엇과도 같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성스럽고 악함을 증오한다면 왜 우리의 성품도 자신의 성품과 비슷하게 만들지 않았을까요? 왜 아동 학대자, 살인자, 성폭력범, 변태 등이 존재하는 것일까요? 그리고 우리는 왜 도덕적 선택을 할 때 고뇌할까요? 그 의미를 찾기 위한 다음 단계로 넘어가겠습니다. 예수는 인간에 대해 어떤 말을 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