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이중요한이유는무엇인가?
한때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 회의적이었던 사도 바울은 예수님의 부활이 우리의 삶에 끼치는 영향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습니다.
‘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났으니 그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지라’ (디모데후서 1:10 NIV)
다시 말하면,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은 우리에게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영원한 생명의 문을 열어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천국으로의 길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전에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너희를…’ (골로새서 1:21b NIV)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영생을 막아서는 장애물은 우리가 죄를 짓고 거룩하신 하나님을 거역했다는 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이해를 뛰어넘을 정도로 우리를 사랑하시지만, 공의를 이루려면 우리의 죗값을 치러야 합니다. 그 값은 바로 죽음입니다.
많은 이들은 왜 전능하시고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악을 심판 없이 용서하지 않느냐고 합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정의를 구하실까요?
여러분이 살인죄로 법정에 섰다고 생각해봅시다. 자리로 걸어가는 데 판사가 여러분의 아버지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여러분을 사랑하시니, 바로 “아버지, 저를 풀어주세요!”하고 빌 것입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눈물을 머금고 “아들아, 나는 너를 사랑하지만 재판관이기도 하단다. 너를 그냥 보내줄 수는 없구나”하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에게 불리한 증거를 보이고 의사봉을 치며 유죄를 선언할 것입니다. 정의는 타협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특히나 재판관에게는 더욱 그렇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여러분을 사랑하기 때문에 재판석에서 내려와 판사복을 벗고 여러분을 대신하여 죗값을 치르겠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실제로 여러분 대신 전기의자에 앉습니다.
이것이 신약에서 그려지는 내용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류 역사에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으로 내려오시고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벌을 받으신 매품팔이가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십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하나님께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우리의 죄를 벌하시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를 위해 스스로 벌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후자를 택하셨습니다.
즉, 하나님의 공의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으로서 완성된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죄는, 그것이 얼마나 악했건 간에 그리스도의 피로 모두 사해졌습니다.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하게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 (골로새서 1:22a NIV)
그런데, 천국으로 가려면 좋은 일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드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