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돈나는 슈퍼스타가 됨으로써 “나는 왜 이 곳에 있는가?”에 대한 답을 내리려 했으며,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저는 오랫동안 명성, 부, 대중의 인정 등을 통해 행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것들을 다 얻은 후에도 무언가 부족한 느낌이었죠. 진정하고 영원한 행복의 의미와 어떻게 이를 찾을 수 있는 지 알고 싶었습니다.”[1]
의미를 찾다가 포기한 경우도 있습니다. 시애틀의 그런지 록 그룹인 너바나의 리드 싱어 커트 코베인은 27살이라는 나이에 절망을 느끼고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재즈 시대의 만화가인 랄프 바톤 역시 삶의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고 다음과 같은 유서를 남겼습니다. “살아오면서 어려운 점도 별로 없었고 친구도 많았으며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결혼도 여러 번 하고 집도 여러 번 바꾸었으며 세계 곳곳을 다녔습니다. 하지만 하루 24시간을 보낼 방법을 생각하기가 너무 지겹습니다.”[2]
프랑스의 위대한 철학자인 파스칼의 경우 우리 모두가 경험하는 내면의 공허함을 하나님 외에는 채울 수 없다고 믿었습니다. 그는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모든 이들의 마음 속에는 하나님 형태의 빈 자리가 있으며, 이는 예수 그리스도만이 채울 수 있습니다.”[3] 이 말이 옳다면 우리는 예수가 우리의 정체성과 이번 삶의 의미에 대한 답을 해줄 수 있을 뿐 아니라, 죽은 후의 삶에 대한 희망도 줄 수 있다고 기대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없다면 의미가 존재할 수 있을까요? 이런 말을 남긴 버트런드 러셀에 따르면 그렇지 않습니다. “신이 존재한다고 믿지 않는다면 삶의 목적에 대한 질문도 무의미합니다.”[4] 그는 자신이 결국 무덤에서 “썩어질 것”이라고 체념했습니다. 러셀은 자신의 저서 “기독교를 믿지 않는 이유(Why I am not a Christian)”에서 삶의 의미에 대해 예수의 모든 발언과 자신의 영생에 대한 약속까지도 부정했습니다.
하지만 증인들이 말한 것처럼 예수가 실제로 죽음을 물리쳤다면 (“예수는 정말로 죽었다가 부활한 것일까요?” 참고) 오직 예수만이 인생의 의미에 대해 말해줄 수 있으며, “나는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에 대해 답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 예수의 말, 삶과 죽음이 우리의 정체성을 확립시켜주고 우리 삶에 의미를 부여하며 미래에 대한 희망을 준다는 점을 이해하려면 예수가 하나님과 우리, 그리고 그 자신에 대해 한 말을 이해해야 합니다.